심아빈 개인전 <단일의 양극>에 부쳐
김인선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대표 | 2013. 12.
<단일의 양극>이라는 전시 제목에서 우리는 작가가 진지한 철학적 태도로 이 전시를 의도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영상 작품 <너와 나 (You & I), 2012-2013> 시리즈는 어찌 보면 아주 순진하면서도 직접적인 장치들로 구성되어있다. 비디오 화면은 거울과 맞붙어 데칼코마니적 이미지를 생성하기 때문에 화면 속 등장 인물은 건너편 거울 속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2013년 작에서 등장 인물은 낚싯대를 잡고 물고기가 낚이기를 기다리며 잠깐 졸기도 하고, 하품도 하고, 지루함에 몸을 비틀며 긁적이기도 하는, 낚시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소한 행위들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마치 물고기가 잡힌 듯 낚싯줄이 당겨졌을 때 인물은 팽팽한 낚싯줄에 맞서게 된다. 이 모습은 화면 바로 아래 설치된 거울에 반사되어 있기 때문에 인물이 마치 수면 아래 비치는 자신을 낚으려는 듯이 보인다. 같은 시리즈로 2012년 작에서는 화면의 등장 인물이 밧줄을 사이에 두고 거울 속의 자신과 힘겨루기를 한다. 양극에 마주한 자신의 모습 사이에서 밧줄은 팽팽한 긴장감을 드러낸다. 밧줄과 낚싯줄이라는 매개체에 집중하게 되는 이유는 이것들이 양극의 지점들을 볼 수 있게 하는 장치들이기 때문이다. 즉 서로를 타자화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것이다.
관람객이 바닥에 엎드려 들여다 본 구멍 속에서 다시 엎드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탄생 (Birth), 2013>이라는 작품 또한 양극에 위치한 존재가 결국에는 자기 자신, 즉 하나임을 인식하게 한다. 허공에 매달린 골프채를 시작으로 그 옆 기다란 선반 위에 놓인 모니터에서는 벌거벗은 여자가 엎드린 채 몸을 앞뒤로 반복적으로 움직이며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영상이 나온다. 이 모니터의 반대편 선반 끝에는 구멍이 나있고 그 구멍 아래 바닥에는 깨진 달걀이 놓여 있다. 깨진 달걀 사이에서 나와 시작되는 붉은 실이 이리저리 뒤엉키면서 바닥을 가로질러 향하는 곳은 맞은 편에 세워진 벽의 구멍 속이다. 이 구멍 앞에 놓인 인조 잔디는 관람객들의 무릎을 꿇리고 엎드려 구멍 안을 들여다 보게끔 하는 또 하나의 장치이다.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구멍을 들여다 보고 있는 관람객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은 천정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에 의해 전송되고 있는 실시간 영상인 것이다. 잠시 생각에 빠진 관람객은 깨닫는다. 아, 처음에 모니터에서 본 누드가 나인 게로군……
우리는 설치 작품 <강태공 (Jiang Taigong), 2013>에서 조금 더 직접적인 사유의 장치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전시 공간 바닥에 세워진 100호짜리 캔버스는 바닥에 놓인 동일한 크기의 거울과 직각을 이룬다. 캔버스를 관통하는 낚싯대와 낚싯줄은 거울 위에 드리워져 있고 낚싯줄 끝의 찌는 거울 속 심연과 맞닿아 있다. 이 작품은 작업하는 행위가 낚시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작가의 생각에서 출발했다. 물고기는 작가에게 영감과 동기 그리고 기회이다. 그것이 언제 잡힐지 모르나 작가는 자신의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어야 한다.
심아빈의 그림에는 초록색이 유독 많다. 그리고 그 위로 구멍이 그려져 있다. 이는 골프장을 연상케 한다. 이번 전시에도 골프의 요소들이 많다. 골프 채, 골프 공, 인조 잔디, 구멍. 왜 이러한 이미지가 반복되어 사용되는지 작가에게 물었다. 작가는 골프가 욕망의 상징으로 읽혀졌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욕망…… 인간이 행하는 구기 스포츠 중에서 골프는 그 사용 면적이 가장 넓다고 한다. 이 운동의 목적은 작은 구멍에 더 작은 공을 넣는 것이다. 마지막 목적지인 작은 구멍을 향하여 광활한 대지를 가로지르면서 그 안에서 내기를 하고 사교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 작가에게는 사뭇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인간이 벌이는 게임의 풍경 속에서 철학적 사유를 끄집어 내었다. 작은 구멍을 향해 골프 공을 때리고 굴리며 공을 찾아 다니다가 다시 공을 발견하면 또 다시 멀리 보내어 찾는 반복된 행위의 끝은 누가 몇 타 만에 구멍에 공을 집어 넣느냐이며, 이러한 승부는 형용할 수 없는 짜릿한 성취감을 맛보게 한다. 이는 어쩌면 인간이 인간을 낳는 탄생의 원초적 과정과 많이 닮아있다. 작가에게 구멍은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이기도 하고 다른 세계로 향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공간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심아빈을 작가로서가 아니라 특이하게도 갤러리스트로 처음 마주했다. 내가 어느 유명한 갤러리에서 근무하고 있던 2004년도에 그는 갤러리에 입사했다. 함께 일한 지 얼마 안되어 그가 실은 영국 미술 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은 작가 지망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갤러리 일을 하면서도 간간히 작업에 대한 고민과 구상을 하며 지내고 있던 것을 알고 있었기에 깔끔한 일 처리 능력처럼 군더더기 없는 느낌의 작업을 하는 그의 행보가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2005년 후반, 그는 일본의 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3개월 간 참여하였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내 원래 근무했던 갤러리로 들어가 여러 해 동안 일을 하며 디렉터까지 되었다. 나는 심아빈이 작가의 길과는 멀어지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그에게서 작가로서의 면모와 기관의 피고용자로서의 태도가 동시에 공존했던 성향 때문이었던지 왠지 작가를 하던 갤러리스트를 하던 둘 다 어울릴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심아빈은 일을 병행하며 작가로서 2006년 개인전 <서울 치키아트쇼 (Cheeky Art Show in Seoul)>를 가졌고 전시에서 시니컬 하고도 위트 있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전시작들은 드로잉 형식이 가미된 회화와 영상이었는데 서술적 요소가 많이 드러나 있었다. 이러한 성향은 작가의 초기 작업 스타일로 특징지을 수 있다. 본격적으로 전업작가로서 살아갈 것을 결심하고 갤러리를 그만 둔 후 열게 된 2011년 개인전 <너와 나 (You & Me)>에서는 추상적인 이미지들을 선보였다. 작가는 서술적 맥락을 삭제하고 구상 이미지도 배제했다. 그리고 기하학적 추상 이미지들로 화면을 구성했다. 선과 점, 그리고 단순한 도형들은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동시에 작가의 선 끝에서 유연하게 다루어져 색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는 초기 작업과는 다르게 보다 추상적이면서 함축적이었다.
나는 주로 심아빈을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전시 오프닝에서 마주치곤 했는데 그 때마다 그는 매우 들뜬 표정이었다. 그는 전시를 매우 진지하게 그리고 열심히 들여다 보고 거침없이 감탄하며 작가에게는 아낌없이 찬사를 보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심아빈이 그 누구보다 작가로서의 행복감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한때 예술을 만드는 작가 군에서 떨어져 나와 그들을 객관화하고 세상과 매개하는 역할을 했던 그였다. 이제는 다시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면서 스스로의 모습을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보는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이번 전시가 그런 확신을 준다. 자신이 다른 작가의 작업을 열심히 보고 즐기며 작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즐거워하듯 나는 그의 작업을 열심히 들여다 보면서 나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나의 삶 또한 즐거워짐을 느낀다.
On Ah-Bin Shim’s Solo Exhibition Opposite Poles of a Unity
Inseon Kim | Representative, Space Willing N Dealing | Dec. 2013
The earnest philosophical intent behind Ah-Bin Shim’s fourth solo show is already hinted at in the exhibition title Opposite Poles of a Unity. Her video installation series You & I (2012-2013) is composed of works employing ingenuous, straightforward devices. A video monitor is paired with a mirror to create the effect of decalcomania: thus the on-screen figures encounter his or her own reflection in the opposing mirror surface. In the 2013 installation, a male figure holds a fishing rod in hand and alternately dozes off, yawns, fidgets or scratches himself in frustration, as one may have seen fishers doing as they sit and wait for something to bite. And then something finally does bite, and the video image shows the man wrestling with the taut line. But since this scene is echoed in the mirror positioned directly below the monitor, to the viewer it seems as though the man is fishing for his own reflection, trying to reel in what appears to be his duplicate image hovering just beneath the surface of the water. The work prior to this (the 2012 installation) similarly shows a character in a tug-of-war with his own likeness. The twinned images constitute a set of poles that are linked by the tautly stretched tension of the rope. Whether a piece of rope or a fishing line, these mediating objects function as tools that make visible the opposite poles of a given situation. The parallel figures reconfirm their being by mutually ascribing a distinct otherness to their likeness.
To observe the work Birth (2013), the viewer must crouch on the floor and peer through a hole; by doing so, she comes face to face with a mirror image of herself. This work continues the underlying theme of the exhibition by impelling the viewer to realize the unity of this image and its (actual) counterpart. Beside a golf club suspended in mid-air, there is a long shelf on which a monitor displays a video of a naked woman down on all fours and moving her body back and forth in a sexually suggestive manner. On the opposite end of the shelf there is a hole, and a cracked eggshell lies on the floor right below this hole. A red thread emerges from the cracked shell, crisscrosses over the floor in a haphazard way, and then disappears through another hole in the facing wall. Below this hole, on the floor, is a patch of artificial turf that invites viewers to kneel down and peek inside the hole. Doing so, the viewer is confronted with the image of her own crouching shape as relayed in real-time by a surveillance camera installed in the ceiling. The viewer gradually realizes that the nude woman in the video was in fact herself.
In the installation Jiang Taigong (2013), we see a more straightforward expression of the theme. A 162x111.6cm canvas is propped up at a right angle to a mirror of the same dimensions that has been laid flat on the floor. A fishing rod emerges out of the canvas, casting its line over the mirror; the float appears submerged in the abyss that is the looking glass. This work derived from Shim’s realization of the similarities between fishing and the artistic process. The fish represents inspiration, motive, and opportunity. The artist, not knowing if and when she can catch this fish, must wait with rod in hand.
Green is a predominant color in many of Ah-Bin Shim’s paintings. And holes abound, bringing to mind the putting green. In this exhibition as well, we see golf clubs and balls, artificial turfs, numerous holes. When asked about the repetitive use of these images, the artist replied that for her golf is a symbol of desire. Desire… Of all the ball games, golf is the sport that makes use of the biggest expanse of land. The aim of the sport is to propel into a small hole an even smaller sphere object. The ball rolls over the vast green towards its final destination, in the midst of much betting and a flurry of social activity. Shim sees a wry humor in all of this. And she succeeds in extracting from this landscape of games a philosophical insight. The process of hitting the ball, walking in search of the ball, finding it, then sending it far off again—this repetition is what is at root of the thrilling sense of achievement, rather than the keeping track of who succeeded by how many strokes. In this sense the game does resemble the primal process of birth. For Shim the hole is an inescapable pit and a portal to another world. Overall, she makes much more active use of the exhibition space through the works shown here than she has done in her previous exhibitions.
Ah-Bin Shim was first introduced to me as a gallerist rather than as an artist, when she joined the gallery for which I was working in 2004. Not long afterwards, I discovered that she was in fact an aspiring artist who had recently returned to Korea after finishing her studies at an art college in the UK. I knew that in between her work at the gallery she was also devoting time to her emerging artwork, and was curious about the direction it would take. I was also keen to witness her development as an artist, knowing there would be elements of the minimal, clear-cut efficiency and lack of superfluity familiar to me through our collaborations at the gallery in her work. At the end of 2005, Shim went to Japan for a three-month residency program. But upon her return, she went back to working for the same gallery, and in a few years became its director. There were times when it seemed to me that she was getting farther and farther away from the path of an artist. On the other hand, because I was well aware of her dual inclination and capabilities as artist and employee of an organization, I felt she would do well whichever path she chose—artist or gallerist. Shim continued to combine the two interests, and in 2006 had her first solo exhibition in Seoul as an artist. The works shown in Cheeky Art Show in Seoul were both cynical and witty, and the paintings and video works to which drawings had been added were strong in narrative elements. This was characteristic of Shim’s early style. The 2011 exhibit You & Me, which followed her decision to quit the gallery and become a full-time artist, was much more abstract. Narrative elements were cut and representational images were eliminated. Instead, geometric abstraction came to the fore. Lines, points, and simple figures were arranged in orderly fashion, but there was also a flexibility to the lines that led off in unconventional ways to tell a story. It was a style both more abstract and implicit.
When I run into Shim it is usually at some opening for an art museum or gallery show, and on such occasions she would be full of excitement. At each exhibition, she would take in the works earnestly and eagerly, expressing admiration and lavishly praising the artist. For me, this is sufficient proof of the joy she derives from being an artist herself. At one point in her career she had distanced herself from other practicing artists, regarding them objectively as she worked as mediator to bridge their work and the world. Now, as she resumes her life as an artist, she seems more than content to peer into her own image and plumb her own depths for inspiration, direction, and truth. This latest exhibition is a perfect example. As Shim delights in immersing herself in the works of other artists and revels in her own life as an artist, I too find myself delighting in the reflections I come across while standing in front of her works, of both myself and my life.
/ Translated by Emily Yae Won |